포탄, 서울에 떨어진다면… 생존의 법칙 5가지
그 포탄이 서울에 떨어진다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남산에 터널을 뚫고, 도로 곳곳에 지하보도를 만들고, 한강에 다리를 놓았던 1970년대 서울을 이미 기억에서 지운 서울 시민들은 연평도 주민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서울 잠원동에 살며 삼성동에 직장이 있는 유정인(가명·30)씨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에 포탄이 떨어진다면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유씨 남편은 “아내와 만나 경기도 분당의 처갓집에 가겠다”고 했다. 이유는 북한과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야 안전할 것 같아서다.
유씨는 임신 8개월이다. 직장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차를 몰고 남편 직장이 있는 가산동에 가서 남편과 함께 움직이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선택은 과연 적절한가. 소방방재청, 서울시, 국토해양부 등이 마련해 놓고 있는 비상시 대응 매뉴얼을 토대로 서울에 포탄이 떨어질 때의 행동요령을 재구성했다.
지하철 환승역 부근에 있다면 행운아
유씨가 포성을 듣고 차를 몰고 나선다면 남편과 만나기 전에 도로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당장 할 일은 지하공간을 찾는 것이다. 대포든 미사일이든 전투기든, 전쟁의 첫 공격은 모두 하늘에서 온다. 지상은 포탄 파편과 건물 잔해로 뒤덮일 게 뻔하다.
서울 곳곳에 지하철역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런 시설이 없던 과거엔 지하 대피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법으로 건물마다 지하실 건축을 강제하고 지하 방공호를 일부러 만들었다.
지하 대피시설의 질은 깊이와 넓이에 좌우된다. 지하철역은 깊으면서 동시에 넓다. 가까운 곳에 지하철역이 있다면 그곳을 향해 뛰어라. 지하철역 지하 2층 정도면 보통 건물의 지하 3∼4층에 해당할 만큼 깊다. 웬만한 미사일 공격도 피할 수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전국에 몇 곳 없는 특별한 대피시설을 제외한다면 지하철역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환승역이 근처에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환승역은 일반역보다 더 깊은 땅 속에 있다. 기존 지하철 선로와 겹치지 않도록 더 아래에 선로를 만들었다. 까치산역, 충정로역, 종로3가역 등은 지하로 30m 이상 내려간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공간도 넓다.
환승역 승강장 중에도 나중에 지은 곳이 더 깊은 경우가 많다.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까치산·충정로역이라면 5호선 승강장을 향해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5호선 승강장 위에 6호선 승강장이 있는 청구역, 3호선 승강장 위에 4호선 승강장이 있는 충무로역처럼 예외도 있다. 5호선 여의나루역은 환승역이 아님에도 한강 바닥을 통과한 직후 정차하는 역이라 깊이가 42m나 된다.
지하철역은 선로라는 ‘탈출구’까지 마련돼 있다. 출입구가 봉쇄되거나 역사가 매몰돼도 다른 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방재청 관계자는 “외국에선 대피시설로 쓰려고 일부러 지하철역을 깊게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하철역이 멀다면 아쉬운 대로 가까운 건물 지하로 가야 한다. 이때도 원칙은 같다. 넓고 깊은 곳을 고르면 된다. 신축 아파트의 지하 2층 주차장 정도면 대피 장소로 적당하다.
지하로 대피했는데 건물이 무너진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특정 건물을 집중 포격하지 않는 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국립방재연구소 관계자는 “특수한 해체공법을 쓰지 않는 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완전히 붕괴되진 않는다. 출입구만 확보된다면 지하가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방재청 측도 “매몰될까 우려해 지하로 피하지 않는 건 바보짓이다. 직접 타격을 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건물이 폭삭 무너질 정도의 폭격이라면, 지상에 있다한들 안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대피시설의 등급을 이해하고 있다면 좀 더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대피시설은 1∼4등급으로 나뉜다. 주변에 있는 건 대부분 2등급 대피시설이다. 지하 2층 이하면서, 바닥면적이 660㎡ 이상이면 2등급이 된다. 화생방 공격에는 취약하지만 웬만한 폭격은 견딜 수 있다. 고층 건물의 지하 2층 이하 공간이나 지하철역, 터널 등이 해당한다.
3등급은 일반 건물의 지하층, 지하차로와 보도, 4등급은 단독주택 등 소규모 1·2층 건물의 지하층이다. 4등급보다는 3등급이, 3등급보다는 2등급이 안전하다.
핵·화생방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1등급 대피시설은 전국에 11곳뿐이다. 서울에는 없다. 현재 신축 중인 시청사 지하에 설치되고 있다. 서울엔 2등급 1481곳, 3등급 2246곳, 4등급 192곳이 마련돼 있다. 집 주변 대피소는 국가재난정보센터(www.safekore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판 봉화
평탄음(경계경보·적의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과 파상음(공습경보·적의 공격이 임박하거나 진행 중일 때 발령)을 일반인은 구별하기 어렵다. 한 음정으로 길게 이어지는 게 평탄음이고, 파상음은 음의 고저가 있다. ‘민방위경보발령·전달규정’에 공습경보는 ‘5초 상승, 3초 하강을 하면서 3분간 22회 반복한다’고 적혀 있다.
애써 구별할 필요는 없다. 사이렌이 울리면 경계경보든 공습경보든 둘 중 하나다. 위험 상황이다. 경계경보라면 대피를 ‘준비’해야 한다. 가스 밸브를 잠그고, 전기 플러그를 모두 뽑고, 눈에 띄는 식량이 있다면 챙겨야 한다. 휴대용 라디오, 손전등 같이 집 떠났을 때 필요할 것들도 집어 들라. 아직 ‘공식적으로’ 대피는 하지 않아도 된다. 단, 노약자와 어린이는 이때부터 대피를 시작해야 한다.
공습경보는 ‘공식적으로’ 대피하라는 신호다. 경계경보 때 준비해둔 물품을 챙겨들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야간이면 두 경우 모두 실내외 전등을 꺼야 한다. 불이 켜져 있으면 목표물이 될 수 있다.
경보는 현대판 봉화다. 경보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라디오에선 사이렌과 음성방송이 나가고, TV와 DMB에선 자막과 긴급 프로그램을 통해 행동요령이 안내된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도 상황을 전파한다. 서울 도심에는 비상경보 발령을 위해 스피커 160여개가 설치돼 있고, 각종 야외 방송시설에서도 음성 안내가 진행된다.
어떤 경우든 차를 몰고 나서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다. 경계경보가 발령되면 운행 중인 자동차는 고가도로나 도심 진입이 금지된다. 주행속도도 낮춰야 한다. 당연히 도로가 막힐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찾아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설상가상, 공습경보까지 발령되면 차량 이동은 완전히 금지된다. 군사작전을 위해 도로를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차량은 도로 우측에 정차해야 하고, 버스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남은 이동수단은 지하철뿐이다. 하지만 지하철역은 이미 대피해온 사람들로 만원일 가능성이 크다. 지하철은 공습경보 상황이라 해도 운행한다. 하지만 한강 다리를 비롯한 지상구간은 다니지 않아 정상적인 운행을 기대하긴 힘들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전시엔 지하철이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면서도 “비상상황 시 지하철 운영계획은 대외비”라며 정확한 답변을 거부했다.
지방으로 피란을 떠난다? 상황에 따라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철도 선박 비행기는 전면전이 아니라면 운항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멈춰 설 경우 사람과 물자 이동이 어려워져 오히려 작전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운항 중단은 국가 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여서 최악의 상황에야 내려질 결정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전면전인지, 국지전인지에 따라 국방부 외교통상부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 등이 협의를 거쳐 철도 선박 항공 운항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시나리오별 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비밀로 분류돼 있다”고 말했다.
대피 이후엔
적당한 곳을 찾아 대피한 뒤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다음 안내를 기다려야 한다. 정부가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을 내리면 비(非)군사 분야 전시대비계획인 ‘충무계획’의 세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된다. 충무계획은 비밀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주요 내용 중 하나인 인적·물적 동원에 관한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중앙 부처들은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국가비상사태 때 특정 물자와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동원할지 세부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국토부를 예로 들어보자. 이 부처는 땅과 바다, 하늘을 모두 관장한다. 동원할 자원도 육·해·공을 넘나든다. 토지·건물·건설기계·자동차와 항공기, 선박·항만·해상화물운송업자 등을 중점관리대상자원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레저용 차량을 구입한 뒤 동사무소에서 ‘중점관리대상 물자 지정 및 임무 고지서’를 받았다면 이 법에 따라 비상사태 때 징발된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비상 시 필요한 차의 종류와 대수를 매년 추산해 각 지자체에 동원량을 배분한다. 지자체는 할당량에 따라 징발 대상 차량을 전산으로 무작위 선발한다.
자동차는 ‘사업용이 아니면서 국가 또는 지자체가 소유하지 않은 자동차’가 동원 1순위다. 신차라면 고장 가능성이 적어 중점관리대상자원으로 지정될 확률이 크다. 실제 동원되면 나중에 보상을 받게 된다.
예비군도 동원된다. 동원명령이 내려진 지역 또는 인접한 시·군·구에 있다면 6시간 안에, 그 밖의 지역에 있다면 24시간 안에 지정된 장소로 가야 한다. 섬이나 바다에 있을 경우 48시간 안에 가면 된다. 민방위대는 사태 수습이 정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소방방재청장,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소집할 수 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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