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Judas) -  찬송

 

[1] 야곱의 4째 아들(창29:35, 마1:2).

(1) 레아가 B.C 1755년에 하란에서 낳았다.

여러형제가 어린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게 했다(창37:26-27).

(2) 흉년에 양식을 사러 애굽에 갔을때 요셉이 베냐민을 가두려 하는고로 애걸하였다(창44:18-34).

(3) 출애굽시에 12지파중 이 지파의 자손수가 가장 많고 세력도 가장 강하여 광야에 있을 때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 늘 선봉이 되었다(민1:27,2:9

(4) 그후 온가족이 애굽에 내려갈 때는 세 아들을 데리고 갔다(창46:12).

(5) 그 본영의 기호는 사자(Lion)이다(창49:9,계5:5).

(6) 그 기업지는 가나안 남방인데 다른 지파보다 광대하고 예루살렘 시온산 성전,왕궁들이 다 이지방에 있고 국명도 유다라 하고 왕통도 다윗으로 부터 23대 시드기야왕까지도 계승하였고 만왕의 왕 예수님도 이 지파에 서 탄생하셨으니 야곱의 축복이A하였다(창49:10).

(7) 여러가지 미덕이 있었으나 크게 실수한 것은 그 자부 다말에게 실수하였는데 그 아들 쌍둥이가 베레스는 다윗의 10대조이다(창38:,마1:3-6)

[2] 예수의 조상으로 바벨론 포로 이전 사람(눅3:30).

[3] 사도중 한 사람으로 일명 다대오라고도 하고 (요14:22,마10:3). 야고보의 형제인데 유다서를 쓴 사람이다(유1).

[4] 예수의 동생이다(마13:55).

[5] 가롯인 유다로서 돈 주머니를 맡아보던 제자로서 은 30에 은사 예수를 팔고 로마 병정에게 잡아준 죄악으로 인하여 자살하였다(마26:14-51,27:5, 행1:18).

[6] 바사바라하는 유다로서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자로 공회의 결의안을 가지고 실라와 같이 회신사가 되어 안디옥 교회에 갔다(행15:22).

[7] 갈릴리 유다로서 주후 6년에 호적할 때 백성을 속여 모반하다가 패망하였다 (행5:37).

[8] 다메섹성 직가에 사는 유다로 그는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회심하던날 그 집에 유숙하였다(행9:11).


유다의 이름은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레아의 소생으로 야곱의 넷째 아들이 었습니다. 유다는 일처리에 신중한 사람이었고 설득력이 있고 이론이 정연한 변론가였습니다. 어린 동생 요셉을 형들이 죽이기로 모의할 때에 그를 구하기 위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창 37:26-27).


또한 그의 형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실시하게 한 후 그 성민을 도륙할 때에 유다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베냐민을 볼모로 잡아두려 하자 요셉에게 베냐민을 놓아주도록 호소력있게 긴 설명을 조리있게 전개한 사람도 유다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물려진 혈통적으로 계승된 축복을 르우벤을 제쳐놓고 요셉이 받았다면 영적인 구속의 혈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지파는 유다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를 사자라 호칭했고 또 유다가 남조의 국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야까지 23대의 모든 왕이 유다의 혈통이요 예수님도 유다지파를 통해 오셨습니다(창49:10).그러나 유다가 본의 아니게 자기 며느리 다말의 계획적인 유혹에 넘어갔던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이 사건이 담고있는 교훈도 기억해야 합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열두형제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항상 신앙과 기도를 앞세워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둘째, 유다와 다말의 사건은 구속의 원리를 밝혀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인류는 다 죄의 혈통입니다. 이는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교훈입니다.


◇ 야곱의 넷째아들-- 하나님의 섭리 불순종 고통과 부끄러움 당해 유다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넷째 아들로서 그 이름의 뜻은 [찬양하다]이다. 그는 열두 형제중 지도력이 탁월하여 그의 후손 중에서 치리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야 예언의 축복을 받게 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9-10).


그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처럼 통간과 살인의 죄는 범치 아니 했으나 가나안의 아둘람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한 것이 실수였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심에 있었더라](창38:2-5)


아브라함에서 유다, 유다에서 다윗, 다윗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흐르는 혈통이 순결하지 못할때 하나님께선 그 혈맥을 끊으시고 새롭게 이어 가시는 장면을 우리는 유다를 통해 다시 한번 찾아 볼수 있다. 유다와 가나안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동생 오난도 결국 죽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가의 혈통을 잇기 위해서 유다와 그의 자부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태어나게 하셨다.


이처럼 유다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인위적 계획이 하나님 섭리의 흐름을 막는 경우 하나님께선 그 섭리의 물꼬를 트시기 위하여 제방을 허물어 버린다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선 자신의 뜻과 방법대로 그 섭리를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일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자식의 죽음과 자부의 몸에서 후사를 얻는 고통과 수치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본 문 : 창38:1-11

요 절 : (마5:28)


1. 경솔한 결혼과 그 결과

1) 유다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그 결혼은 경솔한 결혼이었다. 그는 불신자인 이방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의 소개로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1) 유다의 3 아들의 이름은?(창38:3-5)

(2)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 이름은?(창38:6)


2) 유다의 3아들 중에 두 명은 비명에 죽었다.

(1) 유다의 장자 엘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7)

(2) 유다의 차남 오난은 그 당시의 관습대로 계대결혼을 하였다. 즉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형의 대를 보존하기 위하여 형수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8-9)


* 죄악의 피는 어떤 경우에 가정에서 대를 이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의 불순한 동기가 자식에게 자식은 여인에게로 계속 번져가고 있다.


2. 아내의 죽음과 근친상간

1) 유다는 술에 취하여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의 창녀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

(1) 유다 앞에서 창녀로 가장한 여인은 누구였나?(창38:13-14)

(2) 그렇게 한 이유는?


2)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통간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며느리 다말의 신세도 기구한 일이다.

(1) 유다가 창녀로 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어떤 제의를 하였나?(창38:16-17)

(2) 다말의 요구는?(창38:18)

(3) 그 결과는?(창38:24-26)


* 가문의 씨를 받으려는 여인의 간교함 며느리 다말을 범한 시아버지 유다의 수치스러움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주께서는 그런 집안도 사랑하셨다.



한국컴퓨터선교회제공

 

 

요하난(Johman) -  여호와는 인자하심

[1] 유대국 요시아왕의 장자요 여호야김 시드기야 살룸의 맏형이다(대상3:15)[2] 갓 사람으로 다윗에게 돌아온자인데 산의 사슴같이 빠른 용사중 여덟째 사람이다(대상12:8-12).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을 수축할 때 방해하던 도비야의 아들이며 므술람 의 사위이 다(느6:14,18).

[4] 그 밖의 8인이 있다 (대상3:24,6:9,12:4,대하28:12,렘41:11-16,스8:12 10:16,느 12:22).


욕단(Joktan)

셈의 증손자 에벨의 차자인데 남 아라비아13족속의 조상이다 (창10:21-30,대상 1:17-23)


욕산(Jokshan) -  "새 사냥꾼"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둘째 아들(창25:1-2). 스바와 드단의 선조(대상1:32).


욥(Jop) - 원한다

(1) 아라비아 우스에 사는 의인으로 큰 재산가요 자녀가 많은중에도 여호와 를 경외하 였다(욥1:1).

(2) 여호와가 사탄에게 욥을 칭찬하셨더니 사탄이 말하기를 그가 재산이 많고 자녀가 많 아 행복된 생활중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할 이유가 없다 고 대답했다.

여호와가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하지 말고 무었이든 시험 해 보라 하여 재산과 자녀를 다 잃고 자시늬 몸에는 창질이 나고 세 친구 로부터 여러가지 유 혹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 다(욥1:8-22,4:1, 8:1,11:1<7:4-16,42:6).

(3) 그러므로 여호와가 전보다 배의 축복을 주셨다(욥42:12-15).

(4) 140세를 살며 자손 4대를 보고 별세하였다(욥42:16).

(5) 욥기를 보면 홍수시대는 기록되어 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사는 기록되지 않은 것으 로 보아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인듯 하며 저작자는 모세라하는 이도 있고 다윗이라 하는 이 도 있으며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으나 에 스겔 14:14을 보아 소설이 아닌 것을 중명할 수 있다.

(6) 욥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있으니 @심한 고난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 지 않고. @ 낙심하지 않고 @유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로 받고. @끝까지 인내함이다 (약5:11)


우갈(Ucal) -  "나는 강하다"

아굴이 잠언을 가르친 두 제자 중 한 사람(잠30:1).


우대(Uthai)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자손 (대상 9:4).


우르바노(Urbane) -  도시 로마에 있는 신자요 바울의 동역자이다 (롬16:9).


뜻: "불 같은"

[1] 유다 지파에 속하는 훌의 아들. 출애굽 당시 성막 공사를 감독한 기술자 브살렐의 아버지(출31:2, 대상2:20).

[2] 길르앗 사람으로, 솔로몬의 관장이었던 게벨의 아버지(왕상4:19).

[3] 바벨론 포로귀환 후,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이방인 아내와 이혼한 성전 문지기(스10:24).


우리아(Urias) -  빛

[1] 헷족속의 사람으로 다윗의 충성된 군인이요 미인 밧세바의 남편이다.

그가 랍바에 출정중 다윗왕이 그 처를 간통하고 그 죄의 자취를 감추려고 그를 소환 하여 집에가서 편히 쉬라 하였으나 전쟁중에 있는 동료들을 생 각하고 불응하엿다.

부 득이 전쟁에 다시 보내며 대장 요압에게 편지하기 를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의 제일 앞에 세워 죽게하라하였다.

마침내 그는 전사하였다 애 석하다,충성된 군인이 불의의 화를 당함이여. 그 아내 밧세 바는 다윗왕의 왕비가 되었다(삼하 11:,마1:6).

[2] 유대국 아하스 왕때의 제사장으로 아하스왕이 다메섹에 가서 보낸 우상의 제단 도형 을 받아 그대로 만들어 왕으로 제사하게 하였다(왕하16:20-21)[3] 예레미야 선지와 동시대의 선 지로서 여호야김과 나라에 대하여 예언을 하 였 더니 그를 잡아 죽이려하는 고로 애굽으로 도망하였다(렘26:20-21)


우리엘(Uriel) - "하나님의 불꽃"

[1] 레위의 아들 그핫의 자손으로, 다핫의 아들(대상6:24). 다윗 시대의 그핫 족장(대상15:5,11).

[2] 기브아 사람으로, 유다 왕 아비야의 외조부(대하13:2).


우살(Uzal) -  "방황"

욕단 자손에게서 나온 아라비아 13족의 하나(대상1:21, 겔27:19).


우스(Uz) 

셈의 손자요 아람의 아들이다(창10:23)


우시(Uzzi) -  "힘센"

아삽의 자손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인의 감독이 되어 성전을 관리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찬양대를 도운 보급원 (느11:22-23).


우엘(Uel) -  "하나님의 뜻"

유다 지파 바니의 자손으로, 포로귀환 후 에스라의 명에 따라 이방인 아내와 이혼한 사람(스10:34).


운노(Unno) -  "고난받은"

대제사장 예수아와 동시대의 레위인.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다(느12:9).

 

 

요한(John)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1] 세례요한.


(1)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예수와 친척 관계이며 예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다(눅1:, 2:).

(2) 30세기경 디벨리우스황제(AD.26)때 유대 광야 요단 강변에 나타나 복음을 외쳤다(눅3:1).

(3)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는 회개의 표로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바드셧다(마3:15,막1:9, 눅3:21).

(4) 구약 선지자의 최후의 인물이라 여졌으며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마11:11-13).

(5) 그는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불의한 결혼을 비난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다(막6:17-29, 마14:3-12,28년경).


[2] 사도요한.


예수의 12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야고보와 형제이다.

(1)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과격한 성격 때문인 듯 하다(막3:17, 9:38, 눅9:54-:5).

(2) 예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다(요21:20)

(3)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의 측근자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와 동반되었다(막5:37, 9:2, 14:33).

(4)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으며 말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되어가서 요한 계시록을 썼다.


[3] 베드로의 아버지 (요1:42, 21:15)

[4] 마가요한 (마가복음).

[5] 산헤드린 공회의원(행4:6)



[1] 세례 요한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 성경은 요한의 탄생과 그의 이름과 사역이 모 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순수한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를 살았다.

요한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확신 가운데 지키고 있었다. 그는 안정된 가정에서 안일한 생활을 하기 보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거친 생활을 하는 고 독한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복된 길이었다. 극히 검소한 복장과 간소한 음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천국 복음을 전하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수천년 동안 고대하던 "오실 메시야"를 직접 보고 세례를 배푸는 요한의 입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증언이 터져 나온다.


겸손히 메시야만을 증거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요하의 헌신적인 삶은 스스로의 몸을 태워 빛을 비추며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조차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


요단강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직접 목격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이 들은 소문만으로 그의 존재의 의미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인간 요한에게서 육신에 속한 자들의 안타까운 갈등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보잘것 없는 추한 죄인의 모습을 보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요한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옥중에서 왕비 헤로디아의 간 계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생일 잔치 석상에서 어린 딸의 춤솜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헤롯왕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요한의 목을 주고 만다.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수하고 담대한 신앙의 열정을 지킨 요한의 순교는 비록 그가 한때 일시적으로 실수했었을지라도 천국의 열린 문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요한의 생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별로 남아 있다. 주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그길을 예배한 요한의 삶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늘 복음을 전파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2] 사도 요한


1. 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 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겼다.



2. 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젖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또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밥티스마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 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3. 편협한 마음(막 9:38-40, 눅 9:49-50)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 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쳐졌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그런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오.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열아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병고치는 이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전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행 19:13-14).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 사람 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흉내내어 보려는 사람 이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느지도 모른다.


요한의 성격이 외곬수적인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그의 야망이 연장된 결과였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39). 요한은 주 예수의 이름을 의탁하여 주 에수의 일을 행하는 데 제자 아닌 사람을 제외시키려는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였다.


열 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며 무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말년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꼭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란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4. 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곬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 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유리들의 정력은 결코 옳기만 하지더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은 그 중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고집세고 이기적이며 잘 투덜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5. 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뢰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 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롼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따.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 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럴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다. 군병이 에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6. 서로 사랑한 에수님과 요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게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 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 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워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아니라 에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워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 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에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1)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가"(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본 제자였다(요 20:8/21:7). 요한은 하나님 계시의 환상을 포함한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2)요한의 사랑은 강했다.


사랑에 대햐어 요한이 요약한 말은 사랑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 사랑의 대상을 해롭겔 할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꺽이지 않는 강한 것이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나운 개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자기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 어린 아이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요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다(요일 1:6/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요이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 9:10). 요한의 우뢰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많이 부드러웠졌다.


(이야기)// 어떤 전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영시주의자인 세린도를 만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도 하지 않은 채로 목욕탕을 뛰쳐나오면서 "모두 도망치자, 진리의 적이 들어있는 세린도 때문에 목욕탕이 무너질런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도망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회에 요한은 세린도를 "마귀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뢰와 같은 그의 성격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온유하면서도 강했다. 박식하면 격한 마음이 가라앉지만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지식 에의하여 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섯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삼 세기의 교부들은 계시록의 필자에게 "신학자"란 칭호를 붙였다.


7. 말년의 요한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에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멧세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 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할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8. 결론


요한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보겠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1.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고동을, 그 사랑의 심장을 느껴 본적이 있으신지요? 글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절에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주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의 확인과 확신없이 사랑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늘어납니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사랑의 창고를 계속 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격정적이고 사나웠던 성격의 소유자 요한은 그 격정이 주님께 포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게 되었느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스타프 도오르라는 유명한 화가가 주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주님의 초상화를 그릴까라고 안탔까워 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랑했던 ,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친구가 그에게 찾아와서 이런 유명한 충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나, 그러면 자네는 주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운 주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요"

 

설교 - 홍만조목사 

 

 

 

 

요아스(Josah) -  여호와도 우심

[1] 남국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B.C.837-800).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왕의 계통을 전멸할때 어린 요아스는 고모 여호세바에게 구원을 받아 6년간 성전에서 숨어 자랐다(대하22:11).

그 후 왕이 되자 아달랴와 바알의 제사장 맛단은 죽임을 당하였다.

바알의 산전을 파괴하고 여호와의 성전이 수축되었다.

그러나 대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타락하여 진언하는 스가랴(여호야다의 아들)를 성전에서 돌로 쳐 죽였다(대하24:20-22).

[2] 북 이스라엘왕 (B.C. 801-786).

여호아하스의 아들.

수리아를 격파하고 에돔을 정복하고 그 여세로 유다왕 아마샤와 싸워 예루살렘을 파귀했다(왕하14:8-14).

[3] 북국 이스라엘의 아합왕의 아들(왕상22:26).

[4] 기드온의 부친(삿6:11).

[5] 그 밖에 6인이 있다(대상7:8, 27:8, 삿6:31, 왕상22:26, 대상4:22, 12:3)


요아하스(Joahaz) -  "여호와께서 붙드심"

[1] 이스라엘 11대 왕 여호아하스(B.C. 814-798년)와 동일인물(대하25:25).

[2] 요시야왕(B.C. 640-609년)의 서기관 요아의 아버지(대하34:8).


요안나(Joanna) - 하나님의 은사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눅8:3).

그는 물질로 주님을 도왔고 십자가 에 달리신 후에는 그 시체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중의 하나였다(눅 24:10)


요압(Joab) - 여호와는 아버지 되심

[1] 다윗의 장군. (1)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로서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이다(삼하2:13) (2) 다윗의 가장 유명한 용사중의 한 사람으로 다윗이 유대만 영토로가지 고 있을때 여부스족을 쳐 이기고 총사령관이 되어 군사상에 다대한 공 이 있을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다윗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다.

(대상11:6) (3) 다윗에게 귀순한 용사 아브넬을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원한으로 공 의 를 무시하고 살해하였다 (삼하3:27,31) (4)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였을 때 잘 변호하여 부자를 화목케 하 는 데 성공하였다(삼하14:1-20) (5) 압살롬 반역시에 적은 군사로 압살롬의 대군을 격파하고 다윗의 의사 를 거슬려 압살롬을 죽였다.

왕은 자기 종제 아마샤로 군대장관을 삼 으니 불 만을 품고 있다가 아마샤를 죽였다(삼하18:2-15,19:5-7, 20:4-10).

(6) 아도니야 반역에 참가하였다가 솔로몬에게 피살됨(왕상2:28-34)[2] 갈렙의 후손 홀 의 아들 (대상4:14) [3] 그나스의 손자 (대상4:14).

[4] 스룹바벨과 같이 귀국한 이스라엘사람(스2:6,느7:11)[5] 에스라와 같이 귀국한 사람(스 8:9).


요야김(Joiakim) -  "여호와께서 세우심"

제 1차 바벨론 포로귀환민(B.C. 537년경)의 지도자로, 대제사장(느12:10-26). 스룹바벨과 협력한 대제사장 예수야의 아들.


요야다(Joiada) -  "여호와께서 인자하심"

[1] 바세아의 아들로, 포로귀환 후 예루살렘성을 중수한 사람(느3:6).

[2] 엘리아십의 아들로, 느헤미야와 동시대 제사장(느12:10). 그의 아들들은 이방 여인과 혼인했다가 느헤미야에 의해 축출당했다(느13:28).


요야립(Joiarib) -  "여호와는 다투신다"

[1] 에스라가 레위인을 구하기 위해 보낸 사람 중의 한 사람(스8:16-17).

[2]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지파 마아세야의 5대 조상(느11:5).

[3] 에스라 때의 제사장 여다야의 아버지(느11:10).


요에셀(Joezer) -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고라 사람으로, 시글락에서 다윗을 조력했던 용사(대상12:6).


요엘(Joel) -  여호와는 그의 하나님

[1] 12소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브두엘의 아들이다.

언제 어디서 예언하였는지 미상하 나 요엘서를 상고하면 주전 800년경 유대왕 웃시아의 시대인듯 하 고 그 글중에 나타난 네 가지 해충은 하나님이 장차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 마의 네나라가 연이어 예루살렘 공격할 것을 예언하게 하였다 (욜1:4,2:28-32,행2:16-21) [2] 사무엘의 장자로 사사가 되어 이익을 따라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바르게 하지 못함 으로 장로들의 배척을 받았다(삼상8:2-3) [3] 다윗왕때 레위인의 족장으로서 오벳에돔의 집에 있는 법궤를 옮겨온 자 중의 한 사 람인데 헤만은 노래하며 놋제금을 치는 자이다(대상15:11, 17-19).

[4] 히스기야왕의 명령에 의하여 성전을 깨끗하게 한 레위인.(대하29:12,15)[5] 이방 여자와 사 는 자 (스10:43))


요엘라(Joelah) -  "그 위에 더할"

그돌 사람 여로함의 아들로, 시글락에서 다윗에게 가담한 용사(대상12:7).


요엣(Joed) -  "여호와께서 증인이시다"

에서의 자손 브다야의 아들이며(느11:7), 포로에서 귀환한 베냐민 사람 살루의 조부.


요하(Joha) -  "여호와께서 소생시켰다"

[1] 베냐민 사람으로, 브리아의 아들(대상8:16).

[2] 디스 사람 시므리의 아들로, 다윗의 30용사 중 한 사람(대상11:45).

 

 

요사닥(Jozadak) -  여호와는 의이시다

사독의 혈통에 속한 제사장으로 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대제 사장 여호 수아의 부친이다(스3:2,느12:26)여호사닥과 동일인이다.


요사밧(Joshaphat) -  "여호와가 심판하셨다"

[1] 미덴 사람으로, 다윗의 30용사 중 한 사람(대상 11:43).

[2] 다윗이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그 앞에서 나팔을 불어 봉사한 제사장 중 한 사람이다 (대상15:24).


요사밧(Jozabad) -  "여호와가 주신다"

[1] 그데라 출신의 베냐민 사람으로, 사울에게 쫓겨 시글락에 있던 다윗군에 가담한 용사 중 한 사람(대상12:4).

[2]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으로, 다윗을 도와 사울과 싸운 인물(대상12:20).

[3] 레위인으로, 히스기야왕 시대(B.C. 728-687년)에 성전의 예물 및 봉헌물을 감독한 사람 중 한 사람(대하31:13).


요세(Jose)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1] 예수의 조상중의 한사람(눅3:29) [2] 요셉의 단축형이며 "증가한다"는 뜻 아라바요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며 작 은 야곱의 형제이다(막15:40:47, 마27:56).

[3] 예수님의 육친의 형제중 한 사람(막6:3, 마13:55 요셉)


요섹(Joseich)

예수의 족보중 한 사람인데(눅3:26) 영어 성경에는 요셉이요 일본 성경에는 우리 말과 같이 요섹이다.


요셉밧세벳(Josebbasshebeth) -  "평온히 거하는"

다윗의 3용사 중 맨 처음 거론된 다그몬 사람(삼하23:8). 야소브암이라고도 불린다(대상11:11).


요스브가사(Joshbekashah) -  "딱딱한 자리"

선견자 헤맛의 아들로, 다윗 시대의 성전 악사(대상25:4, 24).


요시뱌(Josiphiah) - "여호와여 풍성하게 하소서"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슬로밋의 아버지(스8:10).


요시비야(Joshibiah) -  "여호와여 살게 하소서"

시므온 지파 사람으로, 예후(B.C. 841-814년)의 아버지(대상4:35).


요시아(Joslah)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고치시다

[1] 남국 유다의 왕. 부왕이 살해 당한 후 8세에 왕위에 올라 30여년을 통치 했 다(B.C.640-609).

그의 치세중 특기할 것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신명기)에 의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었다(왕하22:3,8 대하34:8).

이 개혁은 유다 뿐 아니라 북국 이스라엘에 까지 미쳤는데 이는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압제하고 있는 앗수르의 세력을 배제하는 운동이기도 하였다.

B.C.612년 앗수르는 멸망했으나 그는 바벨론과 애굽과 의 싸움 에 휩쓸려 므긱도에서 전사했다.

[2] 스가랴 시대 사람으로 스바냐의 아들(슥6:10).

[3] 예수의 선조중의 한 사람(마1:10).


요시야 -  여호와께서 그를 지지하심

유다왕 암몬의 아들로 유다 16대 왕(B.C.640-609) (왕하 21:25-26)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선정을 베풂(왕하 22:1)

출생 이전에 그의 사역과 이름 등이 미리 예언된바 있음(왕상 13:1-2).

애굽왕 그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대하 35:20-24).


요아(Joab)

[1] 유대왕 히스기야때의 사관 아삽의 아들이다.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 윗못 수도 곁에서 왕을 부르매 그가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같이 나가 맞으니 앗수르 대장 랍사게가 유대와 여호와를 모독하 였다.

히스기야왕에게 옷을 찢으며 여호와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더 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밤에 와서 앗수르군사 18만5천을 전멸시켰다 (왕하18:13-37).

[2] 히스기야 왕때에 성전을 깨끗하게한 자중의 한 사람(대하29:13).

[3] 유대국 요시아 때에 서기관으로 성전을 수리하기 위하여 돈을 거두어 대 제사장 힐기야에게 전한자중의 한 사람(대하24:8-9).

[4] 그 밖에 2인이 있다(대상6:21, 26:4).


요아김(Jojakim) -  여호와 세우시다

제 1회 귀환민의 지도자.스룹바벨과 협력한 유명한 대제사장 예수아의 아들 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다(느12:10-16).


요아난(Joannan) -  여호와는 은혜롭다

예수의 족보중 한 사람 곧 스룹바벨의 손자인데 영어 성경에는 요안나라 한다(눅 3:27).


요아다(Jehoiada) - 여호와가 알아주심

[1] 바세아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성 중수자 중의 한 사람(느3:6).

[2] 엘리아십의 아들로 제사장인데 느헤미야와 동시대 사람이여 그의 아들 하나는 호 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느헤미야가 축출하였다.

(느12:10,22,13:28).


 

요셉(Joseph) -  그는 이김 여호가 더하시기를 바란다


[1] 야곱의 12아들중 11째 아들. 어머니는 라헬로 동복형제는 아우 베냐민이 있다. 야곱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재질이 뛰어나며 하나님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형제중에 가장 뛰어난 인품을 보이었다. 그 때문에 형들로 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노예 상具인에게 팔려갔으나 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전국적인 기근에 정사를 잘하였으며 양식을 구하러온 형들을 만나 아버지와 같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창37:45).

[2]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기위해 보낸 한 사람 잇사갈 지파의 사람(민13:7).

[3] 아삽의 아들(대상25:2,9).

[4] 외국 여인에게 장가든 버니의 아들(스10:42).

[5] 제사장(느12:14).

[6] 예수의 선조중의 세 사람(눅3:24, 25, 30).

[7]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마1:16, 눅3:23).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잉태한 것을 안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소문내지 않고 비밀리에 관계를 끊고자 했으나 천사가 그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된것을 알려 주므로 그를 맞았다(마1:18-25).

[8] 예수의 형제중 한 사람(마13:55).


[9] 아리마대 출신의 유대인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마아고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하신 후 빌라도를 찾아가 시체를 줄것을 요구하여 자기 집안의 새무덤에 장사하였다 (막15:42-43, 마27:57-60, 눅23:50-53, 요19:38).

[10] 바사바 또는 유스도로 불리는 그리스도인 예수승천후 사도를 보충할 때 맛디아와 같이 후보자가 되었다(행1:23).

[11] 바나바의 개인 이름(행4:36).


요셉이라는 뜻은 "그는 더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첫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 이었으며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만득자로 얻은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단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말함으로써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날로 더해갔습니다(창37:3-11).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에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형들이 의논하여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고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구덩이에 넣게 되었으며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함께 포함되고 있음을 그림을 보듯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장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끈기있게 유혹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되는 고통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족을 애굽 고센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같이 치렀고 요셉도 1백1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그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되었습니다(여24:32).


▷교훈과 적용◁

첫째, 거듭되는 고난속에서도 충성되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받은 축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힘든 유혹을 물리쳤을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시기와 증오의 형들이 노예로 팔아 / 예수수난 계시한 “섭리”야곱이 헤브론에 있을때 그의 열 아들은 북방 1백㎞ 지점의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야곱은 요셉을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보냈다. 요셉이 세겜에 이르렀으나 형들은 세겜 북쪽 30㎞ 지점인 도단으로 이동한 후여서 고생끝에 그곳에 도착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곳에는 당시 인근에서 가장 넓고 좋은 목초지가 있었다고 하며 오늘날의 지명도 여전히 도단(Dothan)으로 불려진다.

요셉의 형들이 멀리서 요셉을 보고 죽여 버리기로 모의한다. 그러나 장자인 르우벤이 생명을 해하지는 말자고 제의하여 광야의 한 구덩이에 던졌다. 또한 유다의 제의에 따라 미디안 상인에게 동생 요셉을은 20세겔에 팔았다. 당시 성인 노예는 은 30세겔에 판매되었으나 요셉은 17세의 소년이므로 20 세겔에 팔았다. 예수님이 은 30세겔에 팔린 사실을 연상하며 미움받고 조롱 받으심이 연상되어 요셉의 수난은 장차 이루어질 예수의 수난을 이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의 사건이 분명하다.


요셉의 형들은 그의 채색옷에 숫염소의 피를 묻혀 아비 야곱에게 보냈다. 야곱은 자기 옷을 찢고 심히 애통해하였다. 야곱의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성경은 그가 『슬퍼하여 음부에 내려』 울었다고 했다. 음부(쉐올)란 육체에서 분리된 자들이 머무르는 지하 어둠의 장소로,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되돌아올 수 없는 출구없는 처소이다. 아들의 피묻은 채색옷을 보고 야곱은 그 절망이 음부에 내려앉은 것 같았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속아 슬피우는 야곱의 모습은 30여년전 야곱에게 속아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채 방성대곡하던 에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국 야곱은 자신이 형을 속인 만큼의 고통을 자식들에 의하여 경험했으니,속이고 속는 험악한 세월의 주인공이 되었다. 요셉이 애굽에 단신으로 들어갔을 때엔 눈물과 애원이 소용없는 고난만이 있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꿈을 무산시키기 위하여 잔인한 계획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들의 음모와 가해는 오히려 요셉의 꿈을 더 빨리 실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계획을 종종 선하신 섭리의 방편으로 이용하신다. 뿐만 아니라 약 4백30년후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대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하셨다.


요셉이 비록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지마는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그에게 임한 모든 환난이 오히려 그에게 유익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창41장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부터 그의 앞 길이 어떻게 형통했으며 그가 어떻게 애굽의 큰 주권자인 재상이 되엇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창40-41장에 보면 거기에 꿈 이야기 두개가 있다. 하나는 옥중에 갇힌 애굽의 두 관원장이 본 꿈이요, 다른 하나는 그후 애굽의 바로 왕이 꾼 꿈이다. 먼저 옥중에서 되어진 일이다. 어떤 아침 감옥에 갇히 두 장관이 근심하며 수심에 잠겨 있었다. "당신들이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요셉이 물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성경 본문에 자세히 기록된대로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꿈 그대로 떡 맡은 관원장은 죽었고 술 맡은 관원장은 해방되어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


창 41장에 보면, 그로부터 만 2년 후 바로 왕이 또 한 꿈을 꾸게 되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꿈에 그가 나일강 하수가에 섰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그 아름답고 살찐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약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것들이 오히려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들을 삼킨지라"


이 꿈은 바로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애굽의 지혜있는 자들을 다 불러들였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 꿈의 뜻은 온 천하에 7년간의 큰 풍년이 있고 다음 7년에 또 큰 흉년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술 맡은 장관이 잊어버렸던 옥중의 요셉을 생각했다. 요셉은 그 꿈을 해석했다. 이로서 그는 바로 왕의 사랑을 받아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창41:38 이하에 보면 바로의 말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또 계속하는 말이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놓음이 오직 보좌 뿐 이니라 내가 너로 애굽의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면서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고 세마포옷을 입혀 바로의 수레에 그를 태우고 온 백성이 엎드리게 했다고 했다. 이 사실은 애굽의 왕이 요셉에게 그의 전권을 이양한 것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처럼 요셉은 전무후무 한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 사건 자체보다도 그 배후에 숨은 성경진리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곧 본문 배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상주권과 그의 섭리라고 할 것이다. 본문 창41:7,8에 보면 "바로가 깬즉 꿈이라.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 말이 있다. 꿈을 꾸고 난 바로의 마음을 그렇게 번민케 한 자는 누구인가? 온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그 마음을 그처럼 고민케 한 자는 누구겠는가?


잠언 21:1에 보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하시느니라" 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보의 물과 같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쏟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잠언에는 왜 사람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하지 않고 "왕의 마음" 이라고 했겠는가? 그것은 왕의 주권보다 더 높으신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다. 이런 말은 성경 다른 곳에도 있다. 에스더 6:1에 보면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 읽게 하더니" 하신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유명한 파사왕 아하수에로가 유대인 모르드개와 그의 백성 유대인들을 전부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바야흐로 그것을 실천하려는 찰나에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게 되셨건가 하는 동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이때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들었다면 모르드개와 온 유대인들은 벌써 다 전멸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날 그 밤따라 왕에게는 잠이 오지 않게 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컨대 천하를 호령하는 이 왕들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잠이 들어 꿈을 꾸게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번민케도 하고 괴롭게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는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으로 하여금 꿈을 꾸고 번민케 하심으로 드디어 그로 하여금 요셉을 찾게 하고, 요셉을 사랑하게 했고, 요셉으로 하여금 드디어 애굽의 재상의 자리에 오르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권세 를 잡은 왕의 마음만 주장한 것이 아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령(악한 마귀)들을 주관하시면서 요셉을 어떻게 보호하신 것을 오늘의 본문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제 이 사실을 생각해 보자. 먼저 마귀 사탄은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요셉을 유록하려 했고 또 범죄케 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지 못하게 하려 했다. 요셉을 넘어뜨리려했다. 그러나 사탄은 그의 계획이 실패되자 이번에는 그를 감옥에 넣도록 했다. 그것으로 요셉을 망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창 39:20에 보면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매 ...." 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사탄의 행동은 중지하지 않았다. 요셉이 감옥 안에서 떡 맡은 장관과 술 맡은 장관의 꿈을 해석하고 그것이 그대로 성취됐을 때 요셉은 더욱 유명해 졌다. 술 맡은 장관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러나 그 장관이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사탄은 그로 하여금 요셉을 잊어버리게 했다. 분명히 창40:23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치 않고 잊었더라" 했다.


그렇게 기뻐하던 장관이 어떻게 요셉을 잊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가 요 셉을 잊지 않고 기억했더라면 그는 요셉을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러한 권세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요셉은 그렇게 해주기를 그 장관에게 청원했던 것이다. 창40:14에 요셉이 그 술 맡은 관원에게 청하기를 "당신 이 나가서 출세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감옥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만한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그 장관에 요고한 청원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장관의 마음에 역사하여 요셉을 기억치 못하게 했고 잊어버리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 요셉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두려워 했다. 이것은 분명히 요셉에게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후일의 역사를 보면 이것가지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 그때에 만일 그 장관이 요셉을 기억하고 곧 그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더라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그가 만일에 자유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면 요셉은 애굽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당시의 교통이나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서 바로는 다시 요셉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바로가 꿈을 꿀 때까지 요셉이 감옥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일이요, 유익했던 일인지 모른다.


사탄이 요셉의 발에 영원한 쇠사슬을 묶어 감옥에 가두어 두려했던 바로 그 시간 그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을 다스리는 방법이요, 사탄의 계획을 지배하는 방법이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합하여 유익케 되도록 섭리하신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요셉은 애굽의 위대한 재상이 된 것이다. 영광의 권좌에 오르게 된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제공 

 

 

올름바(Olympas) - 하늘

로마에 있는 교우(롬16:15).


옷니엘(Othniel) - 하나님은 힘이시다

최초의 사사로 기럇세벨을 탈취한 상급으로 여호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수15:16, 삿1:12).

메소보다미아왕 구산리사다임과 싸워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40년간 사사로 활약했다 (삿3:8-11).


와냐(Vaniah) -  "여호와가 대답하셨다"

바벨론 포로귀환 후, 에스라의 권고에 의해 이방인 아내와 이혼했던 바니 자손(스 10:36).


와스디(Vashti)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왕의 왕비(에1:).

이 왕비가 폐위됨으로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사다(Vaizatha) -  "대기의 아들"

에스더 시대(B.C.464-436년)의 하만의 열번째 아들(에9:9).


요글리(Jogli) -  "추방당한"

단 지파의 족장인 북기의 아버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여러 지파에게 준 토지의 분배를 위해 위원에 임명된 사람 중의 한 사람(민34:22).


요김(Jokim) -  "여호와가 세우심"

유다 자손 셀라의 아들로, 옹기장이(대상4:22).


요남(Jonam) -  비둘기

다윗보다 약 200년 후의 사람으로 예수의 조상중에 한사람(눅3:30).


요다(Joda)

예수의 조상중의 한사람(눅3:26)


요단(Jothan) -  "여호와는 완전하시다"

유다 지파 갈렙 자손으로 야대의 아들(대상2:47).


요담(Jotham) - 여호와는 바르심

[1] 유대왕 웃시야의 아들로 부왕이 문둥병으로 정무를 살피지 못하여 대리로 얼마동안 섭정하다가 죽은후 25세때(758)계승 죽위하여 16년간의 치세를 공의롭게 하고 만년에 다메섹왕 베가에게 위협을 받았다.

이 시대의 선지자는 이사야이다(왕하15:, 대하27:,마1:9).


[2] 기드온의 마지막 아들인데 오브라에서 그의 형들 70인을 아비엘렉이 살륙 하는 주에 서 도피하여 아비멜렉이 왕될 때에 그가 나무들이 왕을 택하는 유명한 비유로 세겜인을 경고 하고 브엘로 피한 후 종적을 감추었다.(삿9:5-5-21).


[3] 갈렙의 후예 (대상2:47).


요라(Jorah) -  "비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한 족장. 하립과 같은 인물(스2:18, 느7:24).


요람(Joram) -  여호와는 바르심

[1] 유대왕. (1) 여호와사밧의 아들로 부왕의 생존중에 8년간 다스렸다(왕하8:16-17, 마 1:8).

(2) 그는 아합의 사위가 되어 그집의 악풍을 받아들였다(왕하8:18).

(3) 자기보다 착한 동생을 죽이므로 여호와가 그의 곳령으로 있던 에돔 과 립나로서 배반케 하고 그 백성과 자녀와 아내와 재물에 재앙을 내리고 그는 창 자가 빠져 죽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이 과연 그대로 응하여 죽었으므로 영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대하22:)[2] 이스라엘왕으로 부친은 아합이요 모친은 이세벨인데 그 형 아하시아를 이어 12년간 재위중 수리아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패하여 보상한 것을 예후가 활로 쏘아 죽 였다(왕하9:24).


요래(Jorai) -  "여호와께서 가르치심"

바산 땅에 거주한 갓 자손의 족장(대상5:13).


요르그암(Jorkeam) - "퍼져 있는 백성"

유다 지파 갈렙 자손 라합의 아들(대상2:44).


요림(Jorim) - 신의 칭찬

예수의 족보중 한 사람 (눅33:29)


요밥(Jobab)

[1] 셈의 6대 손자요 욕단의 한 아들이다(창10:29,대상1:33)[2] 에돔의 제 2대 왕 (창 36:33).

[3] 베냐민 자손중에 2인이 있다(대상8:9,18))


요사(Joshah) -  "여호와의 선물"

시므온 자손의 족장으로, 아마시야의 아들(대상4:34,38).


요사갈(Jozachar) -  여호와가 기억하심

(1) 시므앗의 아들로 요아스왕을 죽인 자중 한 사람이다(왕하12:19-21).

(2) 사밧이라고도 부른다(대하24:26).

(3) 요아스왕을 죽인 이유는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를 인함이라 하였다.

그후 아마샤에게 피살되었다(대하25:2-3)

 

 

요나답(Jonadab) -  여호와는 관대하심

 

[1] 시므아의 아들로 다윗의 족하인데 다윗의 아들 암논과 친하여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에 대한 연고로 발병하였을때 간교한 계교를 가르쳐 주었다(삼하13:3-5).

[2] 겐 족속 레갑의 아들 (대상2:55, 렘35:5-19).


(1) 그는 이스라엘왕 예후 당시에 레갑족속의 족장으로 지혜가 있고 경건하여 극히 존경함을 받았다(왕하10:15-16)

(2)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예인듯하다 (삿1:16)

(3) 예후가 바알 숭배자들을 진멸할 때 협조하였다(왕하10:23).

(4) 자기 자손에게 절제생활에 대하여 훈계한 것을 거의 3백년을 내려 오도록 엄수함을 칭찬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고 요나답을 축복하셨다(렘35:)


⊙ 다윗형 시므아의 아들로 매우 간교 / 암논의 근친범죄에 가담한 모사 꾼 / 선악구분 못하고 인정받으려 설쳐

사무엘하 13장 3∼5절,31∼35절

요나답은 『여호와는 고귀하시다』는 뜻이다. 요나답은 암논의 친구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었다. 요나답은 한 마디로 성경에 심히 간교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요나답은 자질이 잘못된 사람이었다. 요나답은 그의 잘못된 성향 그대로 자기와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고 좋은 덕을 세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암논이 다말을 연애하므로 병이 났을 때 그를 깨우치고 설득하여 암논을 돌이켰어야 하나 암논이 범죄하도록 지원하고 협력하여 모사를 꾸몄다. 결국 요나답은 왕실을 허무는 죄를 지었고 남매간에 범할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계략을 제공한 공범자가 되었다.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했을 때 왕자들이 다 살해된 것으로 잘못 다윗에게 전해지자 다윗이 그 옷을 찢고 땅에 엎드려 괴로워하자 이때에도 요나답이 나타나 왕자가 다 살해된 것 이 아니라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고 다윗왕에게 고하였다. 이는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의 사건으로 2년전에 계획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윗왕을 위로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요나답은 무불간섭으로 모든 일에 뛰어들었고 선악을 불구하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 이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사람의 자질이 그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요나답의 잘못은 여기에 있다.

둘째, 요나답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다가 실패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본문 : 삼하13:1-33

다윗 왕의 형 시므이의 아들 중에 요나답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간교한 자였다. 어느 날 그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병문안을 갔다가 그것이 이복 동생인 다말에 대한 상사병인 줄을 알고 그에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그것은 계속 병든 척하다가 아버지 다윗이병문안을 왔을 때 다말로 하여금 음식을 만들어 직접 먹여주게 하면 몸이나을 것 같다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암논은 그의 말대로 했고 결국 기회를틈타 다말을 겁탈하고 그녀를 쫓아버렸다. 그 일이 있은 지 2년 후 다말의친오빠 압살롬은 동생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다가 양털깎는 날에 모든 왕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암논을 죽였다. 그러자 다른 왕자들은 급히 도망쳤고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에게는 모든 왕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래서 왕이 옷을찢고 땅에 엎드리자 마침 그 곁에 있던 요나답이 다윗에게 "왕자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닙니다. 다말을 욕보인 일로 인해 오직 암논만 죽었을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간사한 요나답이다.


사무엘하 13장 3-5절과 열왕기하 10장 15-17절에 상반되는 두 사람의 요나답이 등장한다.

첫째,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로서 그는 매우 간교한 자다(삼하 13:3).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과 연애할 때 그는 간사한 계교로 궁중에서 자유로 접촉할 수 없는 관례를 무시하고 암논과 다말 을 만나게 해 주었다.


[요나답이 저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체하다가 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말하기를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게 식물을 먹이되 나 보는데서 식물을 차려 그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 소서 하라](삼하 13:5-6) 여기에 등장되는 요나답은 자기 이권과 실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한 인물이다.


둘째, 겐 사람 레갑의 아들이며 예후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자손들에 게 1)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2) 거처할 집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3) 파종도 하지 말며 4) 포도원도 가꾸지 말고

5) 오직 장막에만 거하라는 엄격한 교훈을 내렸다.


이 교훈은 약 2백년간 계속 되었으며, 훗날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경계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우리는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며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대로다 준행하였노라] (렘 35:8-10)


바알 숭배를 말살하려던 예후는 요나답이 자신의 계획에 동의하는 것을 보고 그를 사마리아로 데리고 가서 바알 숭배자를 처단하는 계획을 세웠다.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으로 더불어 바알의 당에 들어 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 는 자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너희중에 있지 못하 게 하라 하고](왕하 10:23)


경건과 절제와 성별로 하나님께 충성한 모범적 평신도상을 요나답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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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 여호와가 주심

 

[1] 스불론땅 갓헤벨사람 아밋대의 아들로써 12소선지중으리 한사람이여요 요 나서의 주인공이다.

 

(1) 주전 825년에 여로보암 2세 때 하나님이 요나를 명하사 앗수르의 도성 니느웨로 가서 그 죄악을 책하고 장차 멸망할 것을 예언하라 하였으나 니느 웨사람과 감정이 좋지 않으므로 다시스로 도망가다 가 폭풍을 만나 죄인 하나를 제비뽑아 물속에 던지는 그 제비에 뽑혀 바다에 던져졌다 이때에 여호와가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요나를 삼키게 하여 고기 배속 에서 3주야를 지내게 되었다 (욘2:) (2) 요나가 그 가윤데서 자복하고 기도할 때에 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하 여냈다(욘3:) (3)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3일간 선포하자 그 성 주민들이 회개하였다 (욘3:) (4) 요나가 성밖에 나가서 어느 박넝클을 죽여 말라 버리는지라 요나가 심히 안타까와 할때 여호와의 말씀이"네가 하루 났다가 시들어지는 박넝쿨도 그롱게 아끼거둔 내가 이 큰성 니느웨의 12만명을 아끼지 않겠느냐"고 일깨워 주셨다 (욘4:) (5)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요나를 들어 말씀하셨 a 다 (마12:39).

헬라인과 로마인은 이 사실을 모두 확증하였다.

 

[2] 베드로의 아버지(요21:15)


[1] 모세의 후예로서 미가의 집 우상의 제사장(삿18:30).

[2] 사울왕의 장자.


(1) 부왕을 도와 이스라엘을 불레셋 기반에서 해방하였다(삼상13:) (2) 부왕이 죽이려고 하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인줄알고 여러번 위험에서 건져주었고 가정과 국민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다.(삼상18:-4,19:1-7,20:12-17,42,23:17-18).

(3) 다윗이 왕이 되면 버금이 되겠다고 하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블레셋 전쟁으로 길보아 산에서 부자 형제 같이 전사함(삼상31:1-2).

(4)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슬픈 노래로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하였으니 곧 활 노래인데 야살의 책에까지 기록되었다(삼하1:18-27).

(5) 다윗이 왕된 후에 요나단을 생각하고 그 가족을 찾아 내어 그 아들 므비보셋에게 그의 조부모의 재산을 돌려주고 그는 다윗의 상에서 먹게 하였으니 이것은 친구 요나단의 우의를 깊이 생각하고 그와 맺은 맹약을 지킴이다(삼상31:, 삼하4:4,9:)


[3] 다윗의 형 시므이의 아들이니 가드의 장수로 키가 장대하고 손발에 6가락씩 가진 자를 죽엿다 (삼하21:21, 대상20:7)

[4] 다윗의 숙부인데 모사이며 서기관이다(대상27:32).

[5] 압살롬의 반란 때에 다윗의 연락원으로 아히마아스와 같이 중책을 역임했고 아도니야 반란때는 다윗이 솔로몬으로 왕을 삼았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도니야로 낙심하여 도망하게 하였다(삼하15:27,36,17:17,20,왕상1:42,43

[6] 유대국 시드기야왕 때의 서기관으로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때려 그의 집에 가두었다.(렘37:15)

[7] 아사헬의 아드로 제사장인데 이방 여자와의 결혼을 금지한 사람이다 (스10:15)

[8] 그 밖에 7인이 있다 (삼하23:32 대상2:32-33, 렘40:8,스8:6,10:15,느 12:14:35).


성경에 요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무려 13명이나 된다 .

⑴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삿 18:30)

⑵ 사울왕의 장남(삼상 14:49)

⑶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삼하 17:15-22)

⑷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삼하 21:22)

⑸ 여라므엘의 야다의 아 들(대상 2:32)

⑹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대상 11:34)

⑺ 웃시아의 아들(대상 27:25)

⑻ 다윗의 친척(대상 27:32)

⑼ 아딘 자손 에벳의 부친(스 8:6)

⑽ 아사헬의 아들(스 10:1 5)

⑾ 요야김 시대의 제사장(느 12:14)

⑿ 아삼 계통의 제사장 (느12:35)

⒀ 시드기야왕의 서기관(렘 37:15-20).


요나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심]이다.


여기 소개하는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 요나단을 말한다. 사울왕이 군사 일천명을 선발하여 요나단에게 맡긴후 베냐민 기브아에 주둔케하여 블레셋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의 용사로 다윗처럼 오직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 신앙의 용장이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 14:6)


어떤날 사울왕은 블레셋과 싸워 승리하기 전에는 아무도 음식을 먹어서 안된다는 금식령을 선포했다. 요나단은 이 선포를 듣지 못하고 지팡이로 꿀을 찍어 입에 넣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사울왕은 맹 세코 요나단을 죽이려 했으나 백성들의 탄원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삼상 14:27-52).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요나단은 그의 무용과 신앙에 감동되어 그를 영원한 벗으로 받아들이고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나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삼상 20:17)


다윗은 요나단의 우정으로 인하여 몇차례 위기에서 구원받게 되었으며 이은공의 보답으로 다윗은 요나단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한 후 그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에게 극진한 후의를 베풀었다(삼하 9:1 -13).


이들의 우정은 창공의 태양같고 황야의 꽃처럼 맑고 아름다운 것으로 참 신앙인들만이 쌓을 수 있는 금자탑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무엘상 14장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이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장남이었으며 천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장관이었다. 그의 주둔지역은 기브아였으므로 블레셋과 마주대하는 진지이기도 하였다.


한번은 병기 든 소년과 함께 적진을 향했다. 불레셋군의 주둔지역에서 20명을 도륙했다. 그때 블레셋군의 혼전으로 큰 전과를 올려 선민의 권위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에 남긴 말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하는 것이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신앙인이었고 정치에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영적인 질서를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자 하나님이 다윗을 들어 크게 사용할것을 알았으며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고 다윗의 장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세워 서로 돕고 협력하는 혈맹관계를 맺었다. 목숨을 대신하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요 피와 성은 다르지만 형제간 같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요나단과 다윗 사이의 우정은 특수한 관계였다.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형제간의 우애보다 더 깊었으며 서로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만큼 뜨거운 친구사이였다. 이는 언약이나 계약에 의한 우정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가진 친교와 대화,상대방을 위한 관심과 서로 베풀었던 후의와 애정으로 결합된 친분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시기에 세상을 떠났으나 자기가 사는 동안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요나단은 탈선한 아버지 때문에 전쟁에 나갔다 길보아산에서 사울과 함께 전사하고 만다. 그 후에 다윗이 왕위에 올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로드발에 생존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였으며 요나단의 우정을 기억하게 됐다. 요나단을 생각하여 므비보셋이 궁중에서 살게 하였으며 특별히 우대하여 자기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게 했다. 이것은 요나단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보답하는 예우였다.


요나단의 선행은 그의 사후에도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에게 상급이 됐다. 다윗은 사울의 재산을 회수하여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으며 그를 돕는 자로 시바를 맺어주어 그를 보살피게 하였으며 평생 므비보셋의 신변을 보장했고 그를 편안히 안주하게 했다. 요나단이 위기에 처한 다윗을 끝까지 도운 것이 므비보셋에게 큰 은혜가 됐다.



▷교훈과 적용◁

첫째, 사욕이 없는 사랑의 봉사는 그 자손에게까지 축복의 조건이 된다. 선한 일에 부요하자.

둘째,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 은혜는 우정에 대한 의리였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


[요나단] ("야훼께서 주심"이란 뜻) 은 사울 왕의 장남이다. (삼상14:49).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정병 3천을 뽑아 그 중 1천을 요나단에게 주어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했다. 이 요나단의 군대와 블레셋 주둔군 사이의 충돌로 인하여 전쟁이 일어난 듯하다. 요나단은 그군대로써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격파했다.(삼상13:2,3).

그는 부친 사울 왕과 힘을 합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세력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병기든 소년에게 [... 야훼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블레셋 진지를 습격하여먼저 20명을 쳐 죽였다. 그의 신앙적 전투 이념은 살마의 다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요나단의 마음은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다윗을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하였다. 이 결합은 신앙적 결합이다. 그는 다윗과 언약을 세워 앞으로 절대 상조와 생명에 대하여 절대 보장하기로 하였으며 자기의 입었던 겉옷과 군복 그리고 칼,활, 띠까지도 다윗에게 주었다.


요나단의 우정은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여 사울 왕이 다윗을 해하려할 때도 그는 아버지 사울 왕의 잘못을 눈물로 간하며 다윗을 구하는데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윗이 사울에 의해 위험에 처하자, 염려하여 요나단은 다윗과 모의했다. 또한 요나단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자기 집은 망할 줄 알고 미리 그 때에 선대해줄 것을 부탁했따. 요나단은 다윗의 집과 언약 하기를 [야훼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요나단의 영감에 의한 예언이니 그는 사울의 집의 장래를 내다보고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사흘동안 다윗을 에셀 바위 틈에 숨기게 한 후, 궁중의 동태를 활쏘는 방법에 의하여 암호로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윗은그 암호에 따라 진퇴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월삭 식사 때 다윗이 보이지 않자 사울은 그의 불참 이유를 요나단에게 물을 때에 요나단은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에 갔다고 거짓말을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을 옹호하다가 부왕의 격노를 사고 핍박을 받았다.


요나단은 암호의 활을 쏘고 다윗과 만나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이 때 맺은 언약은 후일 다윗이 그 자손에게 후한 인정을 베푸는 원인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요나단의 행위가 비애국적, 비효행위라고 비난하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다윗을 아끼고 동정한 정의감의 행동이었다. (삼상 20장)


그 후 요나단은 다윗을 십 황무지 숲 속에서 만나 그를 위로하고 장차 다윗은 왕이 되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 회견이 최후가 되고 말았으니 요나단는 그 후 길보아 산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삼상 23:15-18,31:2). 요나단에게는 므비보셋( 대상 8: 34, 9:40에는 므립바알)이라는 절뚝발이 아들이 있었다. (삼하 4:4) 다윗은 요나단을 위해 그 아이에게 사랑을 표시하고 그를 보호하였다. (삼하 9장 )


이상에서 요나단은 다윗과의 우애를 끝까지 지킨 것을 알 수 있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정의와 다윗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요나단은 우리에게 신앙의 절개가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아버지였던 불의와 타협할 수 없어 등을 돌린 요나단의 결단은 정의보다는 혈연, 이익관계를 더 선택하는 오늘의 모든 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이다. 그의 신의와 정의감은 다윗을 감동시켰고 후에 자기 자녀를 다윗에 의해 보호받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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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벳(Jochebed) -  여호와는 영광이다


레위의 딸이요 모세의 어머니다.

애굽 왕녀에게 양자로간 모세의 유모로 들어가 모세를 신앙으로 길러내며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일깨워 위대한 지도자의 밑걸음이 되었다(출2:1-10, 6:20, 민20:59, 히11:23).

* 성경상에 나타난 3대현모 곧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사무엘의 모친 한나와 같이 그 이름이 빛나있다.


출애굽기 6장20절, 2장1-10절

요게벳은 "여호와는 영광"이라는 뜻이다. 레위의 딸로 아므람의 아내였으며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의 어머니였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신앙이 독실한 부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온 가족이었다.


그러므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으로 3개월동안 숨겨 기를 수 있었으며,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이 전해주고 있다(히11:23). 요게벳은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대로 믿음의 위인으로 하나님이 증거하셨다. 그 아이를 더 이상 기를 수 없게 되자 갈상자에 어린 모세를 넣고 역청과 나무진을 발라 나일강에 그 상자를 띄운 것도 믿음의 행위였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다가 이 상자를 발견하고 유모를 구할 때에 미리암을 통해 요게벳이 소개되고,요게벳은 오히려 인건비를 받아가며 모세를 양육했고,그후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소명을 받는데까지 요게벳은 큰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양육하기 위해 섭리하신 선택이 지배적이었지만, 모세가 젖을 빨며 요게벳의 품에서 유아시절을 보낸 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데 크게 공헌을 하였다. 또 모세와 요게벳 사이에는 궁궐의 40년기간에도 은밀한 교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모세가 애굽사람을 쳐죽일 만큼 강한 선민의식을 가진 것으로 알 수 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요게벳과 아므람은 평범한 서민이었지만 애굽에있는 유대인을 대표할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었다.


둘째, 하나님이 한 지도자를 양육하기 위해 베푸신 큰 섭리와 주권을 확인하자


◇ 레위족의 딸-- 야훼신앙으로 모세를 죽음에서 구원, 레위 족속의 딸로서 같은 레위계열의 남자인 아므람과 결혼하여 아론 모세 미리암을 낳은 삼남매의 어머니이다. 그의 이름뜻은 [여호와는 영광이시다]인데 당시 여성으로선 지니기 어려운 거룩한 성명으로 평하는 자들이 많다. 이것을 보아 요베겟과 그의 가정이 얼마나 야훼 신앙에 투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성경에는 요게벳에 대해서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민26:59)라는 기록밖에는 찾아 볼 수 없으나 출생 3 개월짜리 어린 모세를 갈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운 일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요게벳의 생애가 출애굽의 구원사속에서 그 누구의 생애보다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요게벳은 모세를 낳아 믿음으로 삼개월 동안 숨어서 길렀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최후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출애굽기 2장에 기록된대로 어린 아기를 갈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리는 최후수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손 길에 맡기는 구원행위였던 것이다. 그는 노아 방주를 상상하면서 갈상 자를 만들었으며, 사망의 홍수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역청을 칠한 후에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심정으로 그 상자를 물위에 띄웠다. 이 행위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 생명을 보존하는 교회를 통한 구원활동을 엿볼 수 있다.


(2)요게벳은 모세의 유모가 되어 그의 신앙적 성장에 그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그녀의 위대한 공로이다. [믿음으로 모 세는 성장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 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11:24-25). 이러한 신앙적 결단의 배후에는 요게 벳의 신앙교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민족혼을 불어 넣는다고 유대인들은 믿고있다. 건국대 류태영교수는 그들의 이런 의식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사건의 주역이었던 모세의 어머니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모세의 생모이면서 바로 왕실의 유모 역할을 했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아기 모세에게 젖을 물리며 「너는 아스라엘의 후손이며 훗날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잊지않아 결국 모세는 아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냈다는 것.

모세가 태어난 시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부터 핍박을 받고있을 때였다. 요셉이 애굽총리로 있을때 기근을 피해 애굽의 고센지방에 자리잡은 야곱의 일가는 70명쯤 됐다. 애굽사람들은 요셉의 지혜와 통찰력으로 오랜 동안의 기근에도 주변국가와 달리 식량부족도 없이 잘 지낼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히브리 사람들을 귀히 여겼다. 그러나 2백년의 세월이 지나 이미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알던 바로왕도 죽었다.


이제 애굽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 해 새왕은 히브리백성들을 강제노역 벽돌굽기 농사일등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또 왕은 히브리인이 낳은 남자아이는 하수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모세.이 위기를 어머니 요게벳은 기도와 치밀한 계획으로 극복했다.


바로왕의 딸이 하수에서 목욕을 하는 것을 지켜본 요게벳은 악어가먹지 않는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물이 새어 들어 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발 라 하수에 띄웠다. 요게벳은 아기를 상자에 넣고 하수에 띄우고 딸 미리암 에게 멀리서 보게 했다. 공주가 바구니를 열고 아기가 있는 것을 보자 미리암이 다가가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중에 유모를 불러다 당신을 위해 이 아이 젖을 먹이게 하리까」(출2:7)라고 말하자 「이 아이를 데려다 나를 위해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출2:9)라고 공주는 말했다. 요게벳은 아무 걱정 없이 당당하게 자기의 아들을 기를 수 있었다.


현대의 부모는 현대의 급변하는 위기문화 속에서 자녀를 지키기 위해 요게벳처럼 침착하고 치밀하게 자녀를 말씀안에서 바르게 살도록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뜻이 있어서 너를 이 세상에 보내셨단다」 「넌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거다」란 말로 자녀에게 자아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갖도록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어야한다.



한국컴퓨터선교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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